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쇼와 덴노 (문단 편집) === 한국 관련 발언 ===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ThinkableBraveYoungMeasure, 합의사항1= 한국과의 관계 문단의 기존 서술을 유지하고 추가 서술을 허용한다)] 일본 고대사 연구가인 오다 노부오 씨가 2010년 JP NEWS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쇼와 덴노가 에가미 나미오와의 담화에서 자신들의 뿌리가 조선(한반도)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고 한다. 에가미 나미오는 도쿄대 교수로서 1948년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발표하여 일본의 최고학술상인 천황상을 받고 그 이후로 나온 '한반도 [[도래인]]설'을 탄생시킨 역사학자다. >- 고대 [[일본]]의 지배층과 지금 [[천황]](天皇)과의 관계는 어떤가. >"하나 예를 들겠다. [[1989년]]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 즉위식 때, 제단 위로 올라가서 30분 정도 자신이 천황이 되었다고 신에게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곳에만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 [[한국어|조선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은', '~는' 등의 말이 들어간 문구를 읊었을 것이다." > >- 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있다. 전후 기마민족이동설로 일본역사계에 화두를 던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선생이 쇼와 덴노(히로히토)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죄송합니다. 폐하에 대해 반도에서 왔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쇼와 덴노는 ''' '아니야, [[일본 황실|우리들]]도 [[도래인|조선 출신]]이야' '''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에가미 선생은 그것이 일생에 가장 충격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 >- 그 이야기를 에가미 나미오 씨로부터 직접 들은 것인가? >"에가미 나미오 선생이 한국의 김용운 교수에게 직접 이야기했고, 김 교수로부터는 내가 직접 들었기 때문에 틀림 없다. 일본 황실이 한반도에서 왔다는 근거가 또 있다. > >첫번째 '어머니'를 [[일본어]]로 오카-상(おかあさん)이라고 하는데, 황실에서는 '오모'라고 말한다. '오모'는 어머니가 아닌가. 2번째, 일본 황실에서 [[젓가락]]을 잘 쓰지 않고 [[숟가락]]을 쓴다.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기본적으로 앉는 자세인 정좌[*正座 여기서는 일본의 정좌, 즉 무릎을 꿇고 앉는 궤좌를 가리킨다.]를 하지 않는다. 즉 무릎을 꿇지 않고 [[양반다리]]를 한다는 점이다." > >출처: [[http://jpnews.kr/sub_read.html?uid=6331|일본 로열 패밀리는 백제 왕족! -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3) -한일고대사 연구자 오다 노부오(宇田伸夫) 씨 (JP NEWS)]] 오다 노부오 씨가 언급하는 [[김용운(수학자)|김용운]] 교수는 1927년 도쿄 태생이자 도쿄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던 수학자로, 2019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위의 쇼와 덴노와 에가미 나미오 간의 담화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XLyi2WYAelc)]}}}|| || {{{#000,#fff '''쇼와 덴노와 에가미 나미오의 천황가 근원 담화'''}}} || 영상에서의 담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천황님의 신성불가침이라고 하는 학설을 부정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저는 학자의 양심으로 제 업적과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 >그것을 들은 쇼와 천황은 빙긋이 웃으며 한 말이 "나도 학자입니다"[* 실제로 학자가 맞다. 히로히토는 즉위 전에 해양생물학자로서 연구 논문을 몇 개 내기도 했다. [[아키히토]] 상황이 퇴위하고 나서 어류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점을 보면 히로히토도 즉위를 늦게 했으면 학자로서 계속 연구를 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중략... "나도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얘기하는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믿고 있습니다." > >"내가 당신의 학설을 믿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일본의 일반 국민들은 떡을 먹을 때 떡을 쳐서 먹죠. 그런데 궁에서만은, 왕실에서는 시루떡을 먹어요.[* [[시루]]는 '''한국 고유의 찜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루토쿠를 먹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사람들은 밥을 먹은 뒤에는 차를 마시는데 궁에서는 숭늉을 먹습니다."[* 영친왕의 비였던 이방자 여사도 생전에 “일본 왕실에서도 숭늉을 마신다”고 증언한 바 있다. [[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2/13/107239/7|#]] ] 그것도 한국의 풍습이죠. "그 다음에는 일본 사람들은 마늘을 안 먹습니다. 뭐 약용으로나 먹지 보통 식사로는, 식용으로는 안 먹는데 우리는 마늘도 먹습니다.[* 일본 요리 중 마늘을 사용한 것은 전통 요리에서는 아예 없고, 그나마 현대 요리에서는 가끔 쓰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마늘을 많이 사용하는 중화요리나 서양식 요리에서나 볼 수 있다. 다만 마늘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생전에 몸보신용으로 마늘을 먹곤 했는데, 이것도 당대에는 굉장히 특이한 행동으로 찍혀서 적대세력들에게 '에도에 가면 매운 냄새가 나서 못 가겠네'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나는 이 세 가지 만으로도 내가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을 믿습니다. 하나도 나한테 미안할 것 없습니다."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 일본국 공식 방문|일본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과의 만찬사]]에서 쇼와 덴노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귀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기원 후 6, 7세기에 우리나라가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을 때 귀국의 사람들이 많이 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학문]], [[문화]], [[기술]] 등을 가르쳤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863&pageFlag=&sitePage=1-2-1|국가기록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